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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몸이 하는 말

“에이취 에취” 또 기침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다가도 발동이 걸리기만 하면 통제 불능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 한바탕씩 치르고 나면 목이 깔깔해지고 따끔하게 아프다. 잊을 만하면 활화산같이 터지는 기침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나타난다.     이 불청객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처음에는 집 안 창과 창틀을 모두 바꾸고 나서 시작된 것이기에, 창틀의 독소가 목을 자극하여 나오는 알레르기 현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나 창틀의 독소가 모두 빠졌다고 생각될 즈음에도, 그것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극성을 부렸다. 아니, 오히려 증상은 더욱 심해져서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추운 날씨로 히터가 켜져도 반대로 꺼져도, 그것은 비열한 숨바꼭질을 하듯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며 고통을 치르게 했다. 그러다 내 순간적 감정에까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분의 높낮이에 따라 변덕스러운 곡선을 오르내리며 작은 폭탄들을 마구 터뜨렸다. 단순한 알레르기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의 여린 영혼의 팔목을 세게 비틀어 갔다.   기침이 끊어지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소화기내과 문을 두드렸다. 심각하게 엑스레이를 찍고 거쳐야 할 검사를 모두 마쳤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리 몸이 큰 문제 없이 깨끗하다는 게 아닌가. 다만 칠 년 전에 생긴 약간의 천식 기가 못된 기침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일시적 기침을 달래줄 작은 알약과 스프레이를 처방해 주었다.   그렇다면 기침은 도대체 왜 생겨나는 것일까. 혹시 가슴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삶의 상처들이 응어리져 버겁다고, 때때로 참을 수 없이 억울하다고 세상에 소리 내어 외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몸은 기침으로, 삶을 짊어진 육신의 어깨가 무거웠다고, 올곧은 생을 지키느라 앞만 보고 달리던 눈이 침침해졌다고, 온갖 세상일에 열리던 귀가 더 이상 또렷하지 않다고 자신의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영혼의 지시에 맞춰 온 평생 움직이던 몸이 쉬어가고 싶다고, 나름대로 삶의 고달픔을 기침을 통해 넋두리하는지도 모른다. 힘겨운 삶을 한바탕 크게 쏟아내고 나면, 잠시 시원한 쾌감 같은 것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런데 다시 헤아려보니 기침은 삶을 견뎌 나가는 몸이 힘들다고 흘리는 눈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은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한동안 진하게 울고 나면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또 다른 삶으로의 출발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이제 잊을 만하면 흐르는 삶의 눈물들을 아침마다 알레르기약으로 달래고, 목 깊이 스프레이를 뿜으며 토닥여 준다. 한동안 흘릴 눈물들은 고달픈 삶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다시 일어설 지팡이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기침은 귀소본능이 강한 철새인지도 모른다. 여름 한 철 어딘가에서 생존해 있다가 날이 차가워지면 존재를 드러내는 철새. 그것이 주변 환경을 정화하는 이로움을 지녔는가 하면 조류독감이라는 해로움도 지녔듯, 기침이 시작되면 나의 몸은 괴로워지지만, 한편으로는 흐르는 삶 속의 나를 반추하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쓸데없는 것에 영육을 빼앗기며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한 몸을 돌보지 못한 나. 그런가 하면 제한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한계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미욱함과 물질인 육신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휘말렸던 자신이 아닌가.     삶 속에서 게을러지거나 나태해질 때마다 철새처럼 찾아오는 몸의 통증과 불편함은 나의 게으름과 나태를 일깨워주리라. 삶을 경질하는 몸이 때리는 회초리는 형이상학적이지도, 모호하지도 않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현실이다. 그것은 육신이라는 한계와 세월의 유한성을 내게 일깨운다.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제한된 시간 속에 삶의 중요성을, 따끔한 채찍질로 깨우쳐 주기 위해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기침이 고맙다. 김영애 / 수필가수필 일시적 기침 게으름과 나태 통제 불능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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